월요일, 8월 3, 202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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쌀 부족 일본 vs 쌀 남아도는 한국 < 문화/생활 < 기사본문


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쌀포대가 쌓여 있다. photo 뉴시스


우린 쌀의 나라에 산다. 한국인은 안부 인사를 할 때 “밥은 잘 먹고 다니지?”라고 말한다. 다시 보자는 인사도 “언제 밥 한끼 하자”라고 한다. 돈이 넉넉해야 인심이 난다는 말 중에는 “쌀독에서 인심 난다”는 속담도 있다. 쌀과 밥을 중요시하던 농경문화의 전통 덕분이다.


쌀밥이 주식인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. 일본에는 “천하를 얻어도 두 홉 반(天下取てんかとっても二合半)”이라는 속담이 있다. 일본을 제패해도 하루에 쌀 두 홉 반을 먹는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욕심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다.


그렇다 보니 한국이든 일본이든 쌀을 신성시하고 늘 부족하지 않게 생산을 해왔는데도 올해 일본 유통 업계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. 쌀 부족 우려로 쌀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.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일본 내 쌀 가격은 50% 이상 크게 올랐다. 식음료 브랜드 기업들과 국민들이 쌀 부족 사태를 걱정해 사재기에 들어가면서 대형마트의 쌀 코너가 텅 비는 사태도 벌어졌다. 최근 10년 이상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는 뉴스만 봐 온 한국인들 눈에는 굉장히 생소한 사태로 생각될 수 있다. 하지만 이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면 간단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.


 


귀하디 귀한 ‘자포니카’ 소비국들의 고민


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쌀 가격 급상승과 재고부족 문제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.


먼저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2023년 무더위로 쌀 생산량이 감소해 재고가 크게 줄었다. 이어 올해까지도 고온이 계속되면서 2024년 쌀 생산량도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됐다. 이 때문에 쌀값이 더 많이 오를 것이라는 걱정에 유통사도 소비자도 사재기에 들어갔다. 지난 5월 말에는 일본 전체 쌀 재고량이 150만t 미만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쌀 생산이 급감했던 201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. 이상고온이 지속되면서 올해 쌀 생산이 급감할 것이라는 예측 탓에 소비자 불안은 더욱 커졌다.


코로나19도 영향을 줬다.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외국인 관광객이 입국하지 못했고 내수 불황이 이어지면서 쌀 과잉생산을 걱정해 생산량을 줄였다. 이후 코로나 봉쇄가 끝나고 엔저로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했고 일본의 서민경제 불황은 지속됐다. 내국인의 고기와 생선, 부식들의 소비는 줄었지만 쌀과 밀 소비가 늘어난 것도 쌀 부족에 영향을 줬다. 마지막으로 여름 동안 지진이 이어지며 일부 사람들이 ‘난카이 대지진’을 대비해 쌀을 미리 사두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.


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례 보고서에 따르면, 한국은 쌀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. 한국은 일본보다 북쪽에 위치해 지금까지의 지구온난화에도 쌀 생산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. 고온에 견딜 수 있는 품종 개발도 잘 진행돼 미래도 충분히 대비한 상태다. 지진이나 화산 등의 자연재해에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일본처럼 쌀로 문제가 생길 위험이 크지 않다.


일본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해외에서 쌀을 수입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겠지만 교역을 통해 쌀 부족 우려를 해결하는 것도 많은 문제를 끼고 있다고 한다. 일단 지금은 쌀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일본도 매년 쌀의 과잉 생산 문제가 심각했던 나라다.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. 양국 모두 연평균 쌀 자급률이 100%에 가깝다. 하지만 세계무역기구(WTO) 규정상 쌀 교역을 아예 닫아 둘 수는 없기에 의무적인 쌀 수입량이 발생한다. 그래서 늘 쌀 수입 쿼터를 최대한 적게 유지하는 것이 양국 정부 입장에서는 중요한 업무다. 일시적으로 쌀 생산이 줄어들었다고 성급하게 쌀 수입 쿼터를 늘렸다가는 쌀이 너무 남아돌아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.


게다가 전 세계를 둘러봐도 한국과 일본이 소비할 만한 쌀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. 사실 쌀은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식으로 소비하는 곡물이다. 2021년 경제개발기구(OECD)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약 34%의 인류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. 3분의1 정도가 주식으로 쌀밥을 먹는 셈이다. 쌀과 밀의 생산량 자체는 비슷하지만 밀이 주식인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0% 정도다. 쌀은 대부분 산지에서 주식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전 세계 생산량의 8%만이 교역의 대상이 된다. 반대로 밀은 전 세계를 돌며 교역의 재료가 된다. 한국처럼 밀 자급률은 낮지만 소비량이 많은 국가들도 많고, 주요 생산국의 인구에 비해 생산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. 그래서 밀은 교역 규모가 매우 크다.


쌀의 교역 규모가 작은 것도 문제지만 전 세계가 면과 빵, 과자 등을 통해 비슷한 품질로 소비하는 밀과 달리 한국과 일본이 소비하는 찰기 있는 쌀이 굉장히 희귀한 곡물인 것도 문제다. 전 세계 쌀 생산량 중 약 85~90%는 우리가 흔히 ‘안남미(安南米)’라 부르는 찰기가 전혀 없는 쌀이다. 10~15%만이 한국과 일본이 먹는 찰기 있는 쌀인 ‘자포니카’ 품종이다. 자포니카가 주식인 곳은 한국, 일본, 중국 내 만주 일대와 대만 정도다. 이 중 주요 생산지는 어차피 한국과 일본이다.


 


4모작 동남아보다 생산량 높은 한·일 


게다가 쌀의 품질 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. 동남아시아에서는 쌀을 1년에 4번 수확하는 ‘사모작’까지 가능하니 쌀 생산량 면에서 동남아시아가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. 품종 개량, 그리고 농업 기술의 차이로 동남아에서 4모작을 하더라도 1㏊당 연간 쌀 생산량이 2.5~3.5t인 데 비해 일본과 한국은 4~5t으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. 


게다가 자포니카종의 쌀 품질을 따져봐도 한국과 일본은 최고 수준이다. 1970년대 밥맛 나쁜 통일벼를 국가가 수매하던 때엔 미국 캘리포니아의 칼로스 쌀이 맛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정작 2000년대 들어 이 쌀이 수입되자 한국 쌀에 비해 맛이 없어서 매년 의무수입량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고 있다.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. 한국과 일본은 쌀의 고급 품종 육성과 농업 기술 모두 극도로 발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.


국가끼리 필요할 때 두 나라가 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와 교환해 외환위기나 외부의 경제적 충격을 줄여 주는 ‘통화 스와프’라는 게 있다.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 간에 쌀 스와프 협정을 맺는 것은 재밌는 상상이다. 한국과 일본 중 한 곳이 쌀 부족 상황에 처했을 때 국가 보유분 쌀을 정가로 수출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. 일본은 쌀 가격이 한국보다 높다. 그리고 한국은 천재지변이 일본만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쌀부족을 이유로 일본 쌀이 들어올 일은 많지 않다. 일본 입장에서도 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이 된다. 반면 전쟁과 같은 급박한 위기 때는 우리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. 입맛에 맞는 쌀을 일본에서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건 큰 강점이니 말이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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